이런저런 잡다구리

3월에 내리는 눈은 꼭 이맘때 헤어진 그사람 같아요.

'blog 2010. 3. 23.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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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리는 눈발은
꼭 뜬금없이 다시 나타난 헤어진 애인의 모습 같았습니다.


헤어짐의 아픔보다도
혼자라는 느낌으로 쓸쓸히 보내왔던 그 어두운 기억이 더 아팠는데
오늘 불쑥 이렇게 찾아온 것입니다.


발이 묶여 어디 나서지도 못하는 자동차들처럼
나의 마음도 그 눈밭속에서 서성이고 있습니다.


자동차의 이마에 얹혀지던 눈발들은
서서히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바닥위에도 쌓이고...


어느덧 내 새끼손가락보다도 얇은 전기줄에도 얹혀져있습니다.
내가 떠나온것인지
네가 떠나간것인지 모를
그 아련한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가슴이 메어져 옵니다.


거친 눈발을 헤치며 용감하게 지나간 자동차의 바퀴자국이 남아있습니다.
아직은 이 정도쯤은 아니라는 듯
브레이크 한번 없이 지나갔습니다.


나에게
내 인생에
'저런 과속방지턱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랬더라면,
이렇게 다시 찾아온 눈발을 보고 <가슴 아파>하지 않을텐데 말입니다.


파란 우산을 쓴 중년의 여인이 그 과속방지턱을 밟고 갑니다.
이렇게 걸어가는데야 과속방지턱이 의미가 있겠냐마는
여인은 더욱 소심스럽게 걸어갑니다.
마치 중년의 인생경험을 알려주려는 듯...


점점 눈발은 한겨울의 이불처럼 두꺼워지고,
좌회전금지의 이정표처럼
발자국은 한쪽 방향만을 좇아 갑니다.
나의 인생에도 이렇듯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있었더라면
저는 오늘처럼 차가운 눈발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을 겁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아직 모르는 눈발들이 비행기에서 뛰어내린 병사들처럼
바람을 타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미처 전기줄에 얹히지 못한 눈들은 다시 그 짧은 체공시간을 안타깝게 허공을 떠돌고 있습니다.


어쩌면 바람을 부여잡고 다시한번 기회를 달라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기줄에 얹혀진 눈발이나
그렇지 못하고 스러진 눈발이나
내일 해가 떠오르면 그저 이슬처럼 사라질 것을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기줄에 앉아서 하늘을 보니 아까 놓친 첨탑꼭대기가 생각이 납니다.
저 위에 앉았더라면 내일 아침 해를 누구보다도 먼저 볼 수 있었을 것을...
그저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아까 중년의 여인이 지나간 반대자리에
빨간 자켓의 젊은 여인이 지나갑니다.
전기줄에 얹혀지지 못해 바닥에 쓸쓸이 내려앉은 눈발이
그녀의 뾰족한 구두밑에서 여지없이 으깨어집니다.
'... ...'


눈발이 어디에 얹혀지든
그리고 앉든
눈발은 빼곡이 자리를 차지합니다.


이제는 빈틈조차 찾기 어려운 눈발들은 서로를 부등켜 안으며 하나가 됩니다.


나의 자리를 기꺼이 내어주고
그의 체중을 감당해냅니다.


지나는 바람이 눈발을 나무가지에 얹어주기도 하고,
보잘것 없는 간판에 내동댕이 치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들의 용감한 사랑이 시작됩니다.


때로는 이처럼 무자비하게 햇빛을 보기도 전에 파헤쳐지고
으깨어지기도 하지만,


언제 우리의 사랑이 순탄한 적이 있었습니까?
사랑이 너무 밋밋하면 외려 재미가 덜한법입니다.


이렇게 다짜고짜 소식도 없이 찾아왔다가 하릴없이 어둠속에서 긴 밤을 지내고나면

또다시 눈발은 교회 첨탑에서,
나뭇가지에서,
전기줄에서,
그리고 내가 디디고 선 이 아스팔트위에서도 똑같이 하나가 되겠지요.

원래 만남이란 헤어짐을 목적으로 한다고 하니,
다시 나의 헤어짐은 만남을 생각해도 되겠지요....

3월에 눈 내리는 월요일...

내일 황사나 심하지 않음 좋으련만...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고, <추천>은 꾼과쟁이를 춤추게 합니다.